2. 돈을 못 버는 나를 축하해주기
나는 올해 3월에 대놓고 '돈 안 벌기 실험'을 했었다.
'돈을 벌어야만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나에게 던지는 도전장 같은 것이었다. 반복적인 고민 끝에 운영하는 커뮤니티도 한 달간 쉬기로 공지하고, 그동안 활발히 해오던 콘텐츠 제작, 커뮤니티와 코칭 홍보, 상품 기획 등 모든 것을 내려놨다.
물론 첫 몇 주는 미치도록 불안했다. 그중 어느날 밤에는 침대를 내리치며 통곡을 했다. 이 세상이 너무 미웠다. 무엇보다 이 삶을 또 살기로 선택한 나 자신을 미친듯이 원망했다.
'돈은 도대체 왜 벌어야하는 걸까..?' 돈을 벌어야만 하는 이 세상을 원망하고 싶었다. "왜 이렇게 시스템이 만들어졌냐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돈을 벌어야만 가치가 있다는 신념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깊었던 것이다.
그래도 계속 반대의 선택을 했다. 돈을 벌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불안한 상태로 그냥 있는 것. 청계천 앞에 앉아서 '돈도 못 벌고 쓸모 없는 나'로 있어보는 것.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오히려 더 의식적으로 찐하게 느껴보려고 했다. 그런 나는 거지 같고, 보잘것없고, 무가치하고 참으로 수치스러웠다. 부모님은 나를 흉볼 것 같고 이러다 남자친구는 나를 버릴 것 같아서 괜히 떠보기도 했다.
근데 웃긴 사실이 있다. 계속 그런 나를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다 보니, 그게 적응이 되는 것이다. 😂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런 감정마저 적응이 되니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무의식 일지를 작성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사실 '돈을 못 버는 나'를 축하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는 또 다른 나였다. 그동안은 이 자아를 마주하기 싫어서 억누르고 외면했지만, 사실 이 자아야말로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실험을 통해 마주한 그 자아를 축하해줬다. 처음으로 그 자아를 끌어안았다. 내가 마주한 그 자아는, 더이상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차원으로 넘어왔다는 증거였다.
그러니 여러분에게도 가장 마주하기 싫고 억눌렀던 자아를 끌어안고 축하해주라고 권하고 싶다. 진정한 변화는 익숙한 자아만 지지하는게 아닌, 익숙하지 않은 자아를 끌어안았을 때 비로서 찾아온다.
실제로 '돈 못 버는 나'를 받아들인 이후에 나는 훨씬 더 편하게 쉴 수 있었고, 조급함에서 많이 벗어났다. 그로써 쫓기는 삶이 아닌, 풍요로운 현재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풍요의 확언 (반복만이 답이다)
아마도 내가 가장 많이 강조하는 부분일듯 하다.
긍정 확언의 반복이다. 내 무의식이 돈을 '언젠가 떨어질지도 모르는 것' 또는 '혹시 모르니 항상 저축해야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그정도로 자주 그렇다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자주 쓰는 언어와 속담 속에서, 광고와 미디어를 통해, 매일 보는 뉴스에서, 교육과 사회제도 속에서.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계속 저축하는 모습을 봐왔고, 꾸준히 적금을 듣도록 교육받았다. 티비 속에는 '혹시 모를 재앙'을 준비하라는 보험 광고가 판을 친다. 뉴스에는 취업난 (참고로 나는 직장 생활을 10년 동안 했지만 한 번도 취업난이 아니었던 적을 본 적이 없다), 질병, 폭행 사고 등 온갖 부정적인 소식이 빠짐없이 방영된다.
주변에서는 이런 표현들을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건 비싸서 안돼", "없는 살림에", "쥐꼬리만한 월급", "티끌 모아 태산", "존버가 승리한다",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
이 영향력은 막대하다. 우리의 무의식은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으면 그것을 '사실'로 저장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냥 '굳어진 생각', 신념이다. 이 사실을 역이용해서 나에게 이득인 방향으로 써먹는 방법이 긍정 확언을 반복하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반복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긍정 확언을 들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 잠식될 수밖에 없다. 이건 어쩌면 슬픈 사실일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두려움을 뿌리로 한 제한적인 신념을 훨씬 더 깊고 강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나 자신만큼은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는 차단해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나에게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사실'이 되어버리는 곳이 이 시뮬레이션 세상의 실체다. 긍정확언을 단순히 듣기 좋은 말을 나에게 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작업이다. 나는 이걸 3년째 하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
그동안 시기에 따라 나에게 맞는 확언을 만들기도 하고 책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써먹기도 했다. 아래는 내가 현재 직접 사용하는 풍요의 확언이다. 『치유』라는 책에서 알려준 확언이다. 이 확언을 그대로 사용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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