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크게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성공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성공'을 향해 달리는 운전대를 '결핍이'가 잡을 때가 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꽤 자주 결핍이가 운전대를 잡는다.
오늘은 결핍이가 운전대를 잡았을 때 나를 어떻게 행동하게 만드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나는 그동안 머리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돈을 바라는 이유는 돈이 가져다줄 거라고 믿고 있는 '안정감' 때문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깨달음은 상당히 달랐다.
나의 돈 무의식의 뿌리를 깨달았을 때 눈물도 많이 흘리고 비통했다. 그전까지는 보지 못했다. 돈 무의식이 아빠와 이렇게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도 아빠의 평온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사실도.
이 레터는 돈 무의식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사랑을 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한다. 어쩌면 당신의 돈 무의식도 '돈'과 전혀 관련이 없을 수 있다. 당신의 부모님과 등지기 싫어서 또는 부모님의 인정을 얻기 위해, 그들의 평온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옭아매거나, 성공에 집착하는 것일 수 있다.
진짜 뿌리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의 이야기가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구체적으로 써본다.
'결핍이'가 운전대를 잡은 순간
모든 행동의 뿌리는 둘 중에 하나다. 사랑 또는 두려움. 그리고 두려움은 결핍에서 올라온다. 중요한 건 결핍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이다.
'아, 지금 결핍이 운전 중이네.'
지금 나의 행동의 운전대를 누가 잡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나의 행동의 뿌리가 사랑인지, 두려움인지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감정이다. 두려움은 결핍에서 올라오고, 결핍은 '부족하다'는 믿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핍은 '완전해지기 위해' 뭔가를 계속 찾아 헤매는 특징이 있다. 결핍을 움직이는 감정은 설렘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쫓기는 느낌'에 있다. 조급하고 불안하다.
같은 목표(성공하는 것)를 가지고 있더라도, 사랑과 결핍은 그걸 원하는 이유가 다르다.
결핍은 '성공이 다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나의 가치를 증명해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성공이 필요하다. 그러면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증거를 확인하고 찾는다.
반면에 사랑은 '나는 최고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앎에서 오는 순수한 욕구다. 여기에는 증명하려는 마음도 없다. 밤에 졸려서 편안한 내 침대에서 잠이 들듯이, 원하는 걸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가벼운 만족감만 있다.
하지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증거를 수집하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증거가 있어야만 했다. '이대로도 완전하다'는 확신 말이다. 나는 지금 잘 가고 있다. 이게 맞는 길이다. 나는 잘 하고 있다. 이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렇게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내 안에 나를 의심하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부족하다'고 믿고 있는 나. 뭔가를 더 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내가 있다. 바로 결핍이다.
이처럼 결핍은 증거를 수집하는 데 집착한다. 사실 이건 확신을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게 아니라 확신하는 상태에 집착하는 것이다.
결핍이 절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이미 충분하다는 걸 "그냥 아는 상태"다. 결핍은 반드시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한두 개의 증거로 만족하는 것도 아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신의 뿌리가 결핍에 내려져 있다면 복권에 당첨이 돼도 혹은 사업이 성공해서 떼부자가 되더라도 당신은 조급하고 불안할 것이다.
"이대로도 괜찮은가?"
"이게 다 없어지면 어떡하지?"
의심이 고개를 쳐들 것이고, 또다시 이대로도 충분하고 안전하다는 증거를 찾아 헤매게 될 것이다.
진짜 충격적인 사실은 이것이다.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증거 찾기 게임'은 사실 끝이 없다는 것이다. 이건 애초에 우리가 이길 수 없게 설계된 게임이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증거를 보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충분한 증거가 있었다. 통장에는 돈이 있었고, 밤에는 안전하게 잘 수 있는 집이 있다.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이미 잘하고 있다는 사실과, 나는 지금 안전하다는 증거는 충분했다.
그럼에도 나는 더 많은 증거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집착했다. 증거가 이미 있는데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확신에 대한 집착과 중독의 상태다. 당연히 더 많은 증거를 찾는다고 해서 나아지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증거가 나를 일시적으로 충족시키고 나면, 나는 또 다른 증거에 목말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핍에서 시작된 '증거 찾기 게임'의 함정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 알아차리면 된다.
'내가 또 증거 찾기 게임을 하는 중이네?'
그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왜 이 게임을 하고 있을까?'
나는 스스로 물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쫓고 있는 걸까? 내가 스스로를 계속 증명하고, 증거를 만들어내려는 이유는 뭘까? 어둠에 덮여 있던 자리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서서히 모습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다름 아닌 우리 아빠가 거대한 석상처럼 앉아 있었다.
나의 왕국이었던 아빠
우리 아빠는 절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검소하고, 절약하고, 돈 쓰는 것을 두려워했다. 가난하게 자라 자수성가한 그는 나에게 편한 삶을 제공해주었지만, 동시에 그의 두려움도 고스란히 물려받게 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나 또한 돈을 아껴 써야 한다고 믿었다.
'혹시 모르니 대비해야 해.'
'이러다 다 쓰면 어떡하지?'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이걸로 충분한가?'
'충분하지 않아. 방심하지 마. 돈을 함부로 쓰지 마.'
'미리 준비해.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재앙을 위해 미리 절약해야 해.'
그래서 나는 돈을 두려워했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서도 돈이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다. 내가 직접 관리하기보다는 주식을 잘 아는 아빠에게 맡기는 게 더 편했다. 그래서 내 돈이면서도 아빠에게 맡기고 그 돈을 쓰는 것을 눈치 봤다. 반대로 그 돈을 내가 온전히 관리하게 되면, 혼자서 '다 써버릴까 봐' 걱정했다.
결국 나에게는 선택지가 2개밖에 없었던 것이다. (a) 빡빡한 통제 아니면 (b) 무조건 폭주, 혼돈 시작. 이 이분법적 사고가 바로 내가 아빠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그는 (a)로 성공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지켜낸 사람이다. 그 절약이 그에게는 안정적인 삶을 줬다. 아빠의 왕국에서는 (a)만이 살 길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빠의 왕국에서 자라난 딸이다.
그래서 절약이 아빠에게는 스스로 '선택'한 자유의 규칙이지만 나에게는 감옥 같은 것이었다. 규칙은 물려받았지만 주인의 자리는 물려받지 못했다. 나는 진정으로 돈의 주인이었던 적이 없었고, 주인으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오로지 왕국의 신하처럼 규칙을 따를 줄만 알았다. 내가 돈을 절약하고 펑펑 쓰는 걸 두려워하는 이유는 아빠의 왕국에서는 그게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진짜 중요한 걸 알게 됐다. 내가 진짜 지키려는 건 돈이 아니라, 아빠의 평온이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아빠는 일거수일투족 내가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쓰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잘 생각해보면, 아빠는 이미 나를 믿어주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경로로 큰 돈이 들어오면 이 사실을 숨기려 하는 나를 발견했다. 왠지 아빠가 성질내고 걱정하고 간섭할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가 불편해지는 걸 막으려고 나는 사실을 숨겼다. 사실 돈 규칙 밑에 더 오래된 '관계 규칙'이 깔려 있던 것이다. "아빠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 아빠의 걱정과 실망은 내 책임이다."
'효심' 속에 숨은 그림자
나는 크게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돈을 많이 벌고 싶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바다와 산이 근처에 있는 작은 정원이 있는 크지 않은 주택.
국내 대규모 이너셀프 힐링 센터 설립.
편하게 여행 다닐 수 있는 경제력.
적당한 고독을 선택할 수 있는 지위.
개인 소유 말과 승마장.
부모님에게 넉넉하게 드릴 수 있는 용돈, 그들의 평온하고 안전한 삶.
나는 원하는 게 많다! 우후훗!
하지만 그중에서도 돈을 빨리, 많이 벌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아빠다. 나는 주로 상상한다. 아빠에게 넉넉한 용돈을 드리고,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빠의 모습을.
그가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 장면에는 어두운 신념이 엉켜 있었다. 그런 상태가 되어야만 아빠가 나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인정해 줄 것이며, 그래야 내가 자유로워질 거라는 믿음 말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이유다. 그동안 내가 진짜 간절히 원했던 건, 다른 게 아니라 아빠의 '평가'였다. 내가 그토록 쫓던 건 돈도, 명성도 아니었다. 느낌이었다. "이제 그만 경계해도 돼. 넌 충분해. 이제 쉬어도 돼." 바로 이 느낌. 그리고 그 허락을 나는 아빠가 줘야만 한다고 믿었다.
이 무의식을 알게 됐을 때 가슴이 아팠다. '넌 충분해'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 나는 타인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고 믿었고, 그 허락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이 믿음이 시작된 걸까? 너무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다. 혹시 나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충분히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주 많을 것 같다. 그래서 더 비통하다.
결국 나의 운전대를 잡고 있던 '결핍이'의 정체는 이거였다. 아빠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부족한 나. 아빠의 인정을 돈으로만 살 수 있다고 믿었던 나. 그래서 결핍이는 끊임없이 증거를 찾아내며 질주했던 것이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것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빠, 나는 이제 내 삶을 살게요
내 안에는 두 가지가 엉켜 있었다.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와 "나는 아빠의 감정을 책임져야 하고, 아빠가 인정해야만 내가 괜찮다."
이 두 가지를 확실히 분리해야 할 때가 왔다. 아빠의 왕국에서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다. 그 규칙을 말하던 아빠의 목소리가 어느새 내 목소리가 되어 마음속에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아빠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구속했다.
너무 깊이 스며들어, 이제는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아빠의 신념. 나는 상상 속에서 아빠에게 이 이야기를 건넸다. 그리고 이제 내 삶을 살겠다고 말하며, 대물림되던 그 신념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아빠가 돌아가신 것처럼, 영영 이별한 것처럼 오열했다. 내 안에는 여전히 아빠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이건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다. 2가지의 관계가 새로 시작되려 한다. 내가 나와 쌓는 관계. 그리고 나와 아빠의 관계다.
타인의 허락 없이도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아빠에 대한 사랑은 유지하면서 족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다음 레터에 나눠보려고 한다.
이번 레터에서는 하나만 스스로 질문해보자.
"지금 나의 운전대는 누가 잡고 있는 걸까?"
|